[ Hosi's 테마여행 ]/- 게임 테마

일본 대표 게임들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호시소라 2016. 2. 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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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그누구나 그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뒷이야기가 있듯이...또한 뒷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 사람들이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게임 역시 그 게임이 나오기까지 뒷이야기가 존재한다. 게임을 즐기면서 그 게임이 어떻게 나오게 되고 그 배경은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게임을 하게 되면 좀더 그게임에 대한 애착과 다른 재미까지 즐기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잡담에서는 일본의 대표게임들의 뒷이야기를 알아보려 한다.

 

현재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고 있는 파이날 판타지13. 요즘은 그 인기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의 파이날 판타지를 있게 한 게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드래곤퀘스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파이날판타지의 최고 라이벌 게임인 드래곤 퀘스트. 사실 파이날 판타지는 드래곤 퀘스트의 성공에 편승해서 초기에는 거의 배끼기 수준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게임이 진화하면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파이날 판타지를 만든 사카구치를 이유야 어찌됐든 여기까지 올수 있도록 라이벌의식을 들게 만든 드래곤 퀘스트를 만든 게임 크리에이터는 바로 호리이 유이지이다.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선두주자. 드래곤 퀘스트]

 

이런 드래곤 퀘스트를 만든 호리이 유이지는 1954년에 태어났다.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무작정 도쿄로 올라온 호리이 유이지는 자신의 만화를 각종 잡지사에 기고했으나, 모두 거절당하게 된다. 결국 사회의 쓴맛을 본 호리이 유이지는 재수를 해서 와세대 대학 국문과에 입학을 한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호리이 유이지는 자유 기고가가 되어서 각종 잡지와 신문에 기고를 하였다.

 

그러던 중에 애플컴퓨터를 접하게 되었고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렇게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던 중에 에닉스에서 주최하는 게임 제작 콘테스트에 테니스 게임을 출품해서 입선을 하게 되고, 이 인연으로 게임계에서 일을 하게 된다. 평소 친분이 있는 편집국 사람들이 호리이 유이지에게 당시 최고 인기작가였던 드래곤 볼의 만화가 도리야마 아키라를 소개시켜주게 되고 둘은 쉽게 의기 투합하여 오늘날의 드래곤 퀘스트를 탄생시키게 된다. 발매가 되자 마자 게임사를 새로 쓰는 드래곤 퀘스트의 성공 덕분에 호리이 유이지는 일본 최고의 게임 작가로 발돋음 하였고 현재 가장 존경 받는 게임 작가로 칭송받고 있다. 

 

[역대 초고의 자동차 게임. 그란투리스모]

 

야마우치는 전 세계에서 무려 4천만장을 넘게 판 역대 최고의 레이싱 게임 그란투리스모를 제작하기 위해서 직접 레이서가 되었다. 레이서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사실감 넘치는 레이싱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생활자체를 모두 차와 연결 짓고 있다. 야마우치는 직원 모두가 차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면서 각종 렌터카를 빌려서 직원들이 직접 차를 타보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다. 심지어는 회사 직원들에게 진짜 레이서가 되어야 한다면서 전문 교육기관에서 수료한 다음에 레이서 자격증을 따오라고까지 강요를 하는 수준이다.

 

야마우치는 1967년 치바현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동차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어린시절 자동차에 대한 로망으로 자동차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 그는 그란투리스모를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실제 주행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라고 말한다. 즉 현실세계를 TV와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똑같이 가상으로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실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코스를 직접 가서 운전을 해볼 정도로 열성을 보인다.

 

이렇듯 그는 그란투리스모를 통해서 자신이 직접 운전했던 기분을 게임에서 그대로 구현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거의 집착의 수준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야마우치의 모든 관심사는 자동차에 집중되어 있으며, 어떻게 하면 현실의 자동차를 사실 그대로 게임속에서 구현할까에 대해서 항상 고민을 하게 되고 그런 노력으로 최고의 레이싱 게임인 그란투리스모가 태어난 것이다. 

 

[격투 게임의 미학. 데드 오어 얼라이브]

 

테크모는 그 전가지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였지만, 이렇다 할 3D기술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 바로 이럴 때 이타가키가 닌자팀의 리더가 되어서 3D기술을 연구하여 탄생시킨 것이 데드 오어 얼라이브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성공 덕분에 테크모는 최신의 기술을 확보하고 첨단 회사의 이미지를 덤으로 얻게 되었다. 이는 과거 스즈키 유가 세가에서 AM2 연구소를 이끌어서 최첨단의 기술로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이타가키는 일본 명문 와세다 대학의 법학과 출신이라는 점이다. 막상 법학과를 입학했지만 법률의 딱딱함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무려 7년간이나 학교를 다니며 겨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법률 관련 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평생 도박꾼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거라도 안 된다면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던 그는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회사를 알아봤다. 결국 그는 출퇴근이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게임회사인 테크모에 입사를 하게 된다.

 

그가 게임계에서 유명 크리에이터가 된 것은 역시 데드 오어 얼라이브로 인해서이다. 그전에 15개나 되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이타가키 스스로 그 모든 것이 필요 없어졌다고 할만큼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도박꾼을 꿈꿨던 이타가키답게 그는 게임을 도박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도박에서 돈을 땄을 때와 잃었을 때의 극적인 순간을 잘 표현한 게임이 좋은 게임이라는 것이 이타가키의 지론이다.

 

 

캡콤은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발명하기보다는 기존장르에서 혁신을 불러일으켜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수많은 테스트를 거치며 수정을 한다. 캡콤에서 게임 제작을 총괄했던 오카모토는 솔직히 스트리트 파이터가 있어서 스트리트 파이터2가 존재하듯이 쿠니오군이 있었기에 파이널 파이트가 있었다고 말한다. 바이오 하자드는 얼론 인더 다크에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그는 95%의 법칙을 따른다. 95%의 법칙이란 기존의 게임방식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나머지 5%에서 독창적인 것을 넣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남의 게임을 베끼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시장성을 고려하는 제품이 있는 반면에 상식을 뛰어넘는 게임도 개발해야 업계가 건전해진다는 것이 오카모토의 생각이다.

 

[캡콤의 신화. 오카모토]

 

오카모토는 1961년에 히메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동키콩을 재미있게 하고서 게임 개발자가 될 것을 결심하고 1981년 에 일러스트 레이터로 코나미에 입사한다. 그 후 1983년에 캡콤에 입사하며 평사원에서 회사의 전무이사까지 인정받는 입지전적의 인물이 된다.

 

그의 전적을 살펴보면 과거 한때 오락실을 풍미했던 1942와 손손의 기획을 맡아서 능력을 인정받고 회사의 개발 총부장에까지 오른다. 이때 그는 디렉터로 스트리트 파이터2, 바이오 하자드, 귀무자의 제작을 진두지휘하며 오늘날 세계적인 게임 회사인 캡콤을 탄생시켰다. 이덕분에 게임 개발자로써는 최고 높은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전무이사에까지 등극한다.

 

하지만 일본 게임시장의 불황이 맞물리며 캡콤이 경영난에 빠지자 오카모토와 회사사이에 불화가 생기고 만다. 이때 오카모토는 회사의 속편위주의 정책에 반발하며 새로운 게임을 자유롭게 창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현재의 게임 리퍼블릭을 창업하게 된다.

 

오카모토는 이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 일본 게임 스쿨중에 하나인 게임 컬리지의 교장을 경업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평소 제비우스의 엔도 마사노부와 스매쉬 브라더스의 사쿠라이 미사히로가 바쁜 시간 중에도 게임 컬리지에서 강의를 맡아 줄 정도로 오카모토의 게임계 인맥은 유명하다. 이렇게 항상 게임업계를 생각하는 오카모토는 재미있는 게임이란 보기에 즐겁고, 하면서 즐겁고, 흉내내면서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코에이. 탄생의 비화]

 

일본에서는 최고령 게임 크리에이터인 에리카와 요이치. 코에이의 창업자로 삼국지와 노부나가의 야망과 같은 역사 게임을 기획하고 프로그래밍한 사람으로 일본의 시드 마이어라고 불리고 있다.

 

삼국지는 중국 삼국시대의 조조나 유비 같은 인물이 되어서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외교를 총괄하는데 이는 시드 마이어의 문명과 비슷하는 개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시드 마이어의 해적과 에리카와 요이치의 대항해 시대는 바다를 소재로 해서 각종 무역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에리카와 요이치도 시드마이어처럼 불모지와 다름 없었던 게임시장에 출사표를 던져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의 인물인 것이다.

 

그는 1950년 10월 토치기현 아시카가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학창 시절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을 뿐 컴퓨터라는 것은 한번도 접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염료도매상을 시작하지만, 사업이 잘 안되자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로 컴퓨터에 집착을 하게 된다. 그의 집착은 프로그래밍도 혼자의 힘으로 독파할정도로 대단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직접 게임을 개발할 결심을 한다.

 

게이오대 상격학부 출신인 그가 처음 개발하는 게임의 장르는 경제 시뮬레이션게임인 '투자게임'이었다. 그의 경제적 지식과 게임이 결합된 덕분에 기존의 게임과는 다른 재미를 창조한 그는 시험 삼아서 컴퓨터 잡지에 조그많게 게임 판매 광고를 내게 된다.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면 우편으로 디스켓을 보내는 통신판매사업방식까지 고안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그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컴퓨터 프로그램과 레코드를 파는 상점을 열게 된다. 그리고 상점의 한 켠에는 게임 개발팀을 만들어서 운영을하는 투잡을 하게 된다. 하지만 폭주하는 주문에 개발하는 시간보다 게임 프로그램을 포장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자 그는 게임 전문회사인 코에이를 내게 된다.

 

그 후 코에이는 자신들의 게임을 리코에이션이라 부른다. 이는 'Re+Koei+Tion'이 합쳐진 말로 풀이를 해보면 코에이식으로 역사를 재해석해서 게임을 만든다..대충 이런 뜻이 된다.

 

P.S: 개인적인 글이다 보니 본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가 객관성 및 정확성이 다소 떨어질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쓴이의 편의상 존칭을 하지 않는점 양해 바랍니다. 일부 스샷은 일부 홈페이지에서 퍼옴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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