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1. 22:32ㆍ[ 후아유TV - 인물이야기 (유튜브) ]/- 연예계
80년대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견인하던 여배우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여배우인 동시에 잘못된 연애관으로
희대의 불륜녀로 불린 그녀.
1962년 홍콩에서 태어난 관지림은 태생부터가 남달랐는데 그의 아버지인 관산은 스위스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배우상을 받으며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홍콩 배우 중 최초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우였고 어머니 장빙천 역시 홍콩장성전영공사 소속의 유명 여배우로 이 둘이 결혼을 발표했을 때 홍콩 전체가 떠들썩 했었다고 한다.
이렇게 선남선녀인 부모에게서 뛰어난 유전자를 물려받은 관지림은 말 그대로 인형과 같은 외모를 갖고 태어났고 수많은 사진관의 대표 모델이 되면서 이를 본 신혼 부부들이 관지림같은 예쁜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원하며 머리맡에 그녀의 사진을 놓아둘 정도로 거의 신격화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갖춘 관지림은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랄 것 같았지만 아버지 관산의 외도로 가정은 급격히 흔들리게 되고 이에,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을 잡기 위해 관지림이 태어난 후 9년만에 아들까지 낳았으나 관산의 외도는 변함이 없었고 결국, 관지림이 13세가 되던 1975년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 후 어머니는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고 관지림은 아버지와 함께 홍콩에 남게 되는데 그녀는 어린 자신을 두고도 계속해서 외도를 하는 아버지를 보며 불신과 상처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한 관산은 자신을 향한 그녀의 불신에 쐐기를 박아버리는데 사업을 핑계로 다른 여자와 함께 대만으로 건너간 것. 이에 관지림은 홍콩에 혼자 남게 되면서 또 한번 상처를 받게 된다.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게 된 그녀에게 꿈과 미래를 위한 공부는 사치였고(공간 디자이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자신의 뛰어난 미모를 믿고 여적전시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첨첨입사미'라는 드라마에 장국영, 종보라, 막소총 등과 함께 출연하며 데뷔하였고 타고난 미모로 주목을 받으면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서 러브콜 요청이 쇄도하면서 데뷔 후 근 1년 동안 5편의 드라마와 2편의 영화를 찍는 말도 안되는 스케줄을 소화하게 되는데 당시, 그녀는 집에 갈 시간도 없어 거의 스튜디오에서 하루에 1시간정도 쪽잠을 자며 1년을 버텼다고 한다.
이렇게 단숨에 스타가 된 관지림. 그녀는 이렇게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처음에는 자신이 천생 배우라 생각했지만 불과 데뷔 2년만에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느끼게 되는데 계속되는 러브콜의 이유가 연기를 잘해서가 아닌 단지 작품의 흥행을 위해 자신의 미모가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 즉, 자신이 꽃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당시 홍콩 영화계는 온갖 더러운 관행들이 팽배해 있었는데 그녀의 미모에 반한 관계자들의 추파와 자신을 질투하는 여배우들의 모함은 당시 19세밖에 안된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겹쳐 애초에 연예계에 관심이 없었던 관지림은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하루라도 빨리 이 바닥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파티에 참석한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는데 그는 바로 금융과 무역계의 큰 손인 왕국정이었다. 그를 본 관지림은 그 순간 결혼만이 자신을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 생각했고 이 후 둘의 관계는 급격히 발전하여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다.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은 아버지 관산은 나이도 18살이나 많고, 이혼 경력까지 있던 왕국정과의 결혼에 대해 자살시도까지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보이며 강력히 반대하지만 이에 관지림은 '가정을 망쳐놓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이럴 자격이 있냐?'며 반박하면서 고집을 부렸고 결국은 결혼 승락을 받아내게 된다.
사실 그녀는 연예계를 떠나기 위한 방법으로 왕국정과의 결혼을 선택했지만 속으로는 망설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산이 반대를 하자 평소 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쌓여있던 그녀는 아버지가 강하게 반대를 할수록 반발심이 생겨 그의 의견에 반대되는 것이 복수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결정했다고 한다. 결국 관산의 강력한 반대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셈이 된 것.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관지림은 왕국정과 만난 지 두달만에 번개 결혼을 하며 뜻대로 연예계를 떠나 전업주부로 살게 된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본성을 드러낸 왕국정은 '관지림 같은 여자는 흔한 타입으로' '거리에서 헌팅한 여자가 그녀보다 낫다'며 외도를 시작했고 결국 관지림은 결혼한 지 5개월만에 이혼을 하면서 꽃다운 20세에 결혼과 이혼을 한꺼번에 겪게 된다.
이 후,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청순여신이 아닌 이혼녀로 낙인이 찍히면서 그 누구도 자신을 찾지 않아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1984년 어느날. 관지림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한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그녀에게 전화를 한 사람을 바로 홍금보였다. 홍금보는 그녀에게 '내가 곧 제작할 영화가 있는데 관심 있어?'라고 물어봤고 이에 관지림은 묻고 따지지도 않고 승낙하게 된다.
홍금보가 말한 영화는 바로 하일복성. 국내에는 칠복성으로 알려진 코미디 영화로 관지림은 여자화장실에 잠복한 킬러와 맞닥뜨렸을 때 능청스럽게 눈이 안보이는 척하는 연기를 훌륭히 소화했으며 과감한 노출씬까지 불사하는 등 열연을 펼쳤고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재기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뜻하지 않은 비난도 받게 되는데 영화 촬영 과정에서 같이 출연한 성룡이 관지림에게 연기를 지도하며 챙겨주는 모습에서 염문설이 불거진 것.
당시 성룡은 임봉교와 결혼한 상태였는데 이러한 소문이 돌다가 잘못하면 영화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생각한 홍금보는 성룡과 크게 다투기까지 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대로는 안되겠다 생각한 관지림은 '아버지의 불륜으로 인해 어린시절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내가 불륜을 저지르겠냐' 반박하며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분노와 분함을 토로한 그녀는 이 후 1985년 부동산 재벌가인 마청위와 스캔들이 나게 된다.
마청위는 당시 유명 여배우였던 진미기와 결혼한 유부남으로 이 때문에 당시 임신중이었던 진미기는 충격으로 유산까지 하게되는데 이에, 관지림은 유산을 한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알도 못낳는 닭"이라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
결국, 제대로 빡친 진미기는 마청위와 1986년 이혼까지 하게 되는데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관지림 때문에 자신이 유산을 하게 됐고 성룡의 아내였던 임봉교 역시 많이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관지림은 보란듯이 용형호제(1987) 프로젝트A2(1987)에 출연하면서 성룡과 함께 했고 그 이후에는 지존무상(1989) 정고전가(1991)를 찍으며 당시 마청위와 교제중이던 유덕화와의 스캔들로 화제가 되면서 참여하는 작품마다 염문을 뿌리는 배우로 낙인찍히게 된다.
허나 이러한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는 1992년 영화 황비홍의 히로인으로 출연. 뛰어난 미모와 청순한 이미지를 보이면서 특히 국내에서의 인기가 상당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정보를 알기 어려웠고 국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스크린 상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만을 보고 이미지를 정형화 시켰다.
하지만 영화상에서와는 전혀 다른 그녀는 1992년 마청위와 7년간 이어온 연을 끊고 또 다른 부호인 유난웅을 만나게 된다. 그는 여배우 킬러로 소문난 난봉꾼으로 관지림에게 호감을 사기위해 수많은 보석과 고급 자동차, 심지어 호화 저택까지 선물했고 이에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변태기질이 다분한 그와의 연애는 순탄하지 않았고 결국, 성폭행까지 당하면서 관지림은 이별을 요구했지만 유난웅은 쉽게 놔주질 않고 거래를 제안하는데 그것은 이별을 하고 이별료를 받는 조건으로 엽기적인 행위를 요구. 바로 굴욕의 골프공 사건이었다.
이렇게 관지림은 힘든 연애와 이별을 하면서 고통을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댓가로 큰돈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후, 황비홍 시리즈, 동방불패, 신조협려2, 모험왕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해 온 그녀는 1998년 미국 피플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사 50인'에 선정되기까지 한다.
유난웅과의 연애 이후 한동안 조용하던 그녀는 2001년 자신보다 8살 어린 모델 출신의 황가락과 사귀게 되지만 3년만에 이별을 하게 되고 2005년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작품 '헤어드레서'라는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곽건화와 스캔들이 나게 된다.
그 후 2007년 대만의 10대 부호였던 진태명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목격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이에 대해 그녀는 아니라고 했지만 2009년 진태명이 전 부인과 이혼을 하고 2010년 관지림이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둘의 만남은 기정 사실화된다.
결국, 진태명과 관지림은 2014년 결혼까지 하게 되나 1년만에 성격차이로 이혼하면서 또 다시 관지림의 남성편력이 큰 이슈가 되었다.
예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첫 이혼 후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가오는 남자는 거부하지 않았으며' '가정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만났다'고 밝힌 그녀.
이런 그녀의 발언은 확실히 어릴 적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였으며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신중하지 못한 결혼을 선택하여 또 다시 아버지와 같은 부류의 남자에게 상처를 입으면서 연애의 개념이 사랑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변했고 어느 순간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와 같은 인간이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이 후, 과거 2005년부터 부동산에 투자하며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그녀는 개인사업 및 공익, 자선사업을 시작. 지난 30여년동안 반복된 무분별한 연애와 이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길 원한다며 그 동안 본인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사과하면서 더 이상 타인에게서가 아닌 자신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전했다.
이번 영상을 만들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요. 가정환경이 삶에 있어서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의 어릴적 부모님은 어땠었나... 또 지금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나는 어떤가... 물론 과거가 어둡다고 모두가 관지림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문제가 있는 아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모에게 있다'라는 말처럼 아직 정서적으로 완성이 되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있어 부모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저도 가족들에게 좀 더 믿음이 가는 가장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본 영상을 시청하고 계시는 여러분들도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만을 보고 사람을 탓하기 보단 그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또한 나는 어떤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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