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 해글러를 은퇴시켜 버린 멘탈 파괴자 - 슈거 레이 레너드 [ENG SUB] (Sugar Ray Leonard History #3)

2024. 9. 11. 02:53[ 후아유TV - 인물이야기 (유튜브) ]/- 복싱

반응형

 

1980년대 미들급과 웰터급을 대표하는 F4 중 2명인 '로베르토 두란'과 '토마스 헌즈'를 쓰러트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슈거레이 레너드. 허나 뜻하지 않게 부상 후유증인 '망막박리증'으로 인해 그는 돌연 은퇴를 하고 마는데...

은퇴를 했지만 화려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레너드는 약물에까지 손대며 하루하루를 폐인처럼 지내며 괴로워 한다. 그러다 결국 1984년 5월 링에 다시 돌아온 레너드는 '케빈 하워드'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르게 되는데 이날의 시합은 F4이자 라이벌이라 불린 '마빈 해글러'가 관전하러 와 더욱 관심을 모았다.

허나 그는 예전의 레너드가 아니었다.
허나 레너드는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 평가받는 케빈 하워드에게 프로 데뷔 이후 최초의 다운을 당하며 고전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이기긴 했지만 레너드는 예전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레너드의 복귀에 사람들은 해글러와의 일전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흥분했으나 레너드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기대에 찬 사람들의 뒤통수를 또다시 치고 만다.

그렇게 레너드가 링을 떠난 후 로베르토 두란과 토마스 헌즈를 쓰러트린 마빈 해글러는 F4 중 최강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이에 사람들은 더욱 더 레너드와 해글러의 대결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레너드는 해글러 vs 토니 심슨 경기의 해설자로 나와 "내가 왜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보고 있다"라며 해글러를 추켜 세우며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따로 있었는데...

1986년 3월 마빈 해글러는 존 무가비와의 대결에서 예전과 달리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지켜본 레너드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복귀를 선언. 해글러와 대결을 결정한다. 


그리고 1987년 4월 6일 수많은 군중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맞붙은 두 레전드.

시작벨이 울리고

인파이터답게 해글러는 레너드를 압박하며 펀치를 날렸으나 레너드는 자신의 특기인 아웃복싱으로 넓은 링을 활용하여 뒤로 빠지면서 해글러가 러시해 올 때마다 클린치로 공격을 막는다.

이 후에도 쫓고 쫓기는 지루한 상황이 2라운드 중반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빅매치를 기대한 관중들이 실망할 무렵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레너드의 반격을 가했고 이에 당황한 해글러를 보며 관중들도 들썩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해글러의 강인함은 타 파이터들과는 급이 달랐고 이에 레너드는 작전을 변경하여 해글러의 멘탈을 공략하기 시작. 4라운드에는 쇼맨쉽에 가까운 펀치를 날리며 자극하지만 해글러는 그의 가벼운 펀치에 데미지가 없다는 듯이 웃어보인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레너드는 도발을 하는 제스처를 보이는데 경기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라운드가 끝나고 코너로 돌아가는 해글러의 표정은 엄청 화가 나 보였다.

5라운드 

레너드는 이전 라운드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해글러와 맞붙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불리하다 싶으면 클린치를 시전. 이에 짜증 난 해글러는 회심의 스윙을 날렸으나 빗나가고 만다.

이 후, 또 다시 요리조리 피하면서 펀치를 내지르며 점수를 따내는 레너드. 막판 해글러가 그를 코너에 밀어넣었지만 시원하게 공격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공을 당하게 되는데 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자 해글러는 레너드가 얄미웠는지 밀쳐내는 짜증을 보인다.

하지만 레너드는 이런 해글러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매 라운드 멘탈 공략을 당해 짜증이 난 해글러는 평정심을 잃어 경기력 난조를 보일 것이고, 아웃 복싱으로 이런 상태의 해글러에게서 쉽게 점수를 따낸다) 이렇게 해글러의 성향과 특징을 모두 파악하여 시나리오를 완성한 레너드는 역시 천재였다.

이런 레너드의 계략에 말린 해글러는 계속해서 안면을 허용했고 이 후, 비슷한 상황속에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9라운드 레너드를 코너에 몰아 넣고 공격을 하는 해글러. 한동안 방어에 치중하던 레너드가 갑작스레 속사포 연타를 시전하며 해글러의 안면을 정신없이 두들기기 시작. 이에 해글러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며 정신없이 맞는 와중에서도 맞받아치는 기가 막힌 장면을 연출한다.

이 후, 레너드는 계속해서 링을 활용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해글러를 빠르고 재치있는 움직임으로 공략하는데 라운드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움직임이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어느덧 마지막 라운드 종료 30초 전. 둘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서로 난타전을 전개. 결국, 공이 울리며 승패는 판정으로 가리게 된다.

결과는 레너드의 2:1 판정승.

화려한 개인기로 점수내기식의 펀치를 날린 레너드는 49.1% 펀치 적중률로 해글러의 36.7%보다 앞서며 부심단의 지지를 얻었던 것. 하지만, 대부분의 미디어는 '레너드가 라운드를 훔쳤다' 말하며 그의 속공은 화려했지만 과장된 보여주기 식으로 상당수가 해글러의 팔과 글러브에 걸렸으나 이를 제대로 못 본 심판진들이 속은 것이라 평했다.

해글러 역시 판정에 불복. 불쾌함을 표시하며 레너드에게 재대결을 요청했지만 레너드는 쿨하게 거부. 이에 대해 레너드가 동일한 조건에서는 해글러를 이길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여 재대결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사실, 둘의 경기가 성사되는 조건으로 레너드 측에서 해글러에게 대전료 부분을 양보하는 대신 (해글러 1200만 달러, 레너드 1100만 달러) 자신의 강점인 스피드를 잘 살릴 수 있는 기준보다 큰 링과 15라운드가 아닌 12라운드로 아웃복서인 레너드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고 이에 금액적인 이익과 예전 레너드가 케빈 하워드와의 대결에서 다운을 당한 것을 본 해글러는 대결을 받아들였던 것. 

해글러의 자만이든 영리한 레너드의 전략이든 결과는 레너드의 승리였고 자존심이 상한 해글러가 계속 재대결 요청을 반복하자 레너드는 완전히 은퇴를 해버린다.

이에, 해글러는 '이런 더러운 수작이 복싱이냐?'며 분노하며 돌연 은퇴 선언. 1987년 67전 62승(52KO)2무3패의 전적을 남기고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된다.

하지만, 해글러가 은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너드는 돌연 은퇴를 번복. 1988년 11월 복귀전에서 체급을 올려 캐나다  'Donny Lalonde'와 맞붙는 레너드. 예상과는 달리 4라운드에 다운을 당하고 코 윗부분까지 찍어져 피를 흘리는 등 위기를 맞는다. 이에 벌써부터 승리한 것처럼 두손을 치켜올리는 Lalonde의 모습에서 레너드는 분노를 일으키게 되는데

9라운드
각성한 레너드의 속사포 펀치에 Lalonde는 버티지 못하고 다운을 당한다. 그러나 다시 일어선 Lalonde. 하지만 그의 얼굴에선 더 이상 투기가 보이지 않았다. 각성한 레너드는 상대가 어떤 상태이든 무조건 쓰러트리겠다는 일념하에 펀치를 날렸고 이를 버티지 못한 Lalonde는 또 다시 링에 쓰러졌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이렇게 복귀전에서 TKO로 승리하면서 WBC 수퍼 미들급, 라이트 헤비급 왕자에 오르며 사상 최초의 메이저 기구 5체급 석권을 이뤄낸다.

이 후, 1989년 6월 '토마스 헌즈'와의 재대결을 갖는 레너드. 이 시합에서는 헌즈에게 두 번이나 다운을 당했지만 무승부라는 이상한 판정으로 패배를 면했고 같은 해 12월 로베르토 두란과의 세번째 대결에서는 해글러전과 같이 치고 빠지기로 승리를 따냈으나 '알맹이 없는 시합 내용'으로 비난을 받게 된다.

경기 내용이야 어찌됐든 결과를 중시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레너드의 기록은 대단했고 그는 여전히 천재라 불렸지만 '세월에는 장사없다'는 불변의 진리는 레너드도 빗겨가지 못했다.

1991년 2월 9일 어느덧 36세가 된 황혼의 레너드는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젊은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테리 노리스의 상대로 2번이나 다운을 당한 끝에 12라운드 판정패하게 되고 이에 현실을 직시한 레너드는 이 경기를 끝으로 완전히 은퇴를 하는 걸로 보였지만 1997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또다시 복귀한 레너드는 헥토르 카마초와 대결. 자신의 40번째 대결에서 생애 유일하게 KO패라는 불명예를 마지막으로 40전 36승 24KO 3패라는 기록을 남기고 완전히 은퇴하게 된다.

복싱 선수로는 최초로 1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1980년대 세기의 복서로 선정, 1997년 명예의 전당 헌액 등의 엄청난 기록을 남긴 레너드는 은퇴 후 권투 분석가 및 사업가로 성공했으며 청소년 당뇨병 연구 재단 설립과 매년 치료를 위한 지원을 하는 등 기부활동도 활발히 해 LA스포츠 엔터테인먼트위원회로부터 엠배서 더 우수상을 받는 등 복싱을 할 때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회에 귀감이 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상대를 쓰러트리는 건 내 주먹이 아니라 나의 냉철함이다” - 슈거 레이 레너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