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계 흑인차별에 금지된 기술 백플립으로 빅엿을 날린 당찬 소녀 - 수리야 보날리 (Surya Bonaly History)

2021. 10. 13. 02:34[ 후아유TV - 인물이야기 (유튜브) ]/- 스포츠

반응형

 

 

1998년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시상식. 한 흑인선수가 단상위에 올라가지 않고 메달을 거부하며 울고 있다. 이 선수가 이러는 이유는 과연...?

풀네임 수리야 바루나 클로딘 보날리(Surya Varuna Claudine Bonaly)인 수리야는 사실 Claudine이란 이름을 가진 고아였으나 18개월이 되던 해 수잔(Suzanne)과 조지 보날리(Georges Bonaly)에게 입양되면서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을 의미하는 단어인 수리야(Surya)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 후 그녀는 4살부터 기계체조를 배우다 11살 때 접한 피겨 스케이팅에 매료되어 자신의 앞날을 결정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해온 체조 덕분에 기술적인 부분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급성장을 보였으나 1984년 더블 액셀을 시도하다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두 달 후 아이스링크에 복귀한 그녀는 이전 사고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더블 액셀을 시도했고 이를 인상 깊게 본 당시 프랑스팀 코치였던 '디디에 가일라게'의 눈에 띄면서 본격적으로 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코치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며 빠른 성장세를 보인 수리야는 12세라는 어린나이에 빙판 위에서 뒤로 점프해 도는 백 플립을 성공. 1986년에 프랑스 동부 안시에서 열린 갈라에서 첫 백플립을 공개했으며 같은 해 텀블링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시니어 은메달리스트가 되면서 주목을 받게 된다.

이 후 열린 1993년 프라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렇게 그녀가 주목을 받게 되자, 당시 코치였던 '디디에 가일라게'가 수리야가 마다가스카르 해안에서 떨어진 레위니옹 섬에서 태어났고 코코넛이 흩어져 있는 해변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하면서 피겨 스케이팅에서 흔치 않은 흑인선수에 신비함까지 더해지면서 언론들의 이목을 끌게 되지만 1989년 수리야가 유럽 선수권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권에 프랑스 니스 태생으로 밝혀지면서 날조된 이미지 메이킹이었다는 것이 들통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허나 이러한 논란속에서도 수리야는 1989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 첫 시니어 국가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이 후 그녀는 ISU 유럽선수권 여자 싱글 5년 연속 챔피언, 프랑스 피겨 선수권 대회는 자그마치 9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프랑스와 유럽에서는 그녀를 대적할 만한 실력의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유럽권에서는 승승장구하는 그녀였지만 유독 올림픽 및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수리야는 여성 피겨 선수 최초로 4바퀴를 회전하는 쿼드러플 토 루프를 성공해 놀라움을 보였으나 기술 점수에 비해 터무니 없이 낮은 예술 점수로 5위에 그치고 만다.

이 후 열린 1993 파리 라리끄 대회에서 7개의 트리플 점프를 하며 엄청난 경기력을 보였으나 5개의 트리플 점프를 한 러시아의 옥사나 바울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만다.

계속되는 아쉬운 결과에 그녀는 "내가 피부색이 하얗다면" "좀 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라 말했고 많은 사람들 또한 '그녀가 흑인이기에 예술 점수를 많이 받지못한다' 말하며 인종차별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게 된다.

1994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경쟁이 되던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지 않게 되면서 수리야의 우승이 당연시 여겨졌던 상황. 그녀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준비한 것을 훌륭히 소화해내면서 이번에야말로 우승을 할 것이란 자신감이 넘쳐있었다.

하지만... 1위 단상에 오른 건 수리야가 아닌 일본의 사토 유카. 수리야는 2위 은메달에 머물게 된다.

그렇게 금메달 수여가 끝나고 다음인 은메달 수여를 할 차례. 하지만 수리야는 2위 단상위에 올라가는 것을 거부한 채 링크위에 서있었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시상자는 몇 번이고 단상위로 올라가기를 권유했으나 요지부동인 수리야. 이에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지고, 결국 시상자는 어쩔 수 없이 링크 위에 서 있는 그녀의 목에 은메달을 걸고는 그녀를 단상 위에 올린다.

하지만 이내 울음을 터트리며 은메달을 벗어버리는 수리야. 또 다시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지고 즐거워야 할 시상식 분위기는 서로 눈치를 보며 어색한 공기만 흐르게 된다. 그렇게 최악의 시상식이 끝난 후 수리야는 인터뷰에서 "나는 운이 없나 봐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눈물을 흘리며 퇴장한다.

그 후 4년이 흐르고...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수리야.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 무대라 그녀는 금메달에 대한 갈망이 무척이나 컸다.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그녀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여자 피겨 선수중 처음으로 트리플 토룹 트리플+토룹 콤비네이션을 성공하며 훌륭한 경기를 펼쳤으나 프리 프로그램에서 그만 엉덩방아를 찧는 큰 실수를 하게 된다. 사실 그녀는 당시 아킬레스 파열 부상으로 인해 컨디션이 온전치 않았다고 한다.

자신은 항상 예술 점수에서 편파판정으로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고 여겼던 그녀에게 있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기술적인 부분을 완벽히 소화해야하는데 이런 큰 실수를 해버렸으니 그녀는 '이제 모든 것이 끝이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결국 그녀는 금기시 된 필살기인 백 플립을 해버리고 만다.

앞서 말한 백 플립은 1976년부터 안전상의 이유로 국제빙상연맹에서 금지한 기술었는데 이를 모를 리 없었던 수리야였지만 그녀는 마치 보란듯이 백 플립을 했고 이런 그녀의 행동은 선수로서의 마지막을 자신의 장기로 마무리한 것과 동시에
그 동안 받았던 차별에 대한 최후의 반항이었다.

결국 금지된 기술을 한 수리야는 감점을 받게 되고 10위를 기록. 그녀의 점수가 나왔을 때 관중들의 야유가 있었는데 이는 수리야를 향한 것이 아닌 부당한 심판들과 피겨계를 향한 것이라는 평이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녀는 "나의 마지막 경기만큼은 심사위원이 아닌"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준 관중을 위한 무대를 하고 싶었다" 라고 말하며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오늘은 피겨계에 흔하지 않은 소수자인 흑인 선수 수리야 보날리의 이야기였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편견 때문에 항상 불리한 조건을 안고 경기에 임해야 했다던 그녀. 허나 테크닉적인 부분은 인정하나 예술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있다고 그녀의 실제 경기를 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예술 부분은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수 밖에 없기에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틀리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백인이 주류인 피겨 스케이팅에서 흑인으로서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꽤나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라는 평도 많습니다.

 

과연 공식적인 자리에서 메달을 거부하고, 금지된 기술을 보란듯이 보여준 그녀의 행동은 감정이 앞서 도가 지나친 행동일까요? 아니면 부조리에 대항하는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일까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