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오! 수정에서의 영원한 첫사랑 - 이은주 (Lee Eunjoo History)
2000년대 초중반 도시적인 차가움과 따뜻한 감성을 고루 갖춘 신비로운 분위기로 많은 주목을 받은 배우. 하지만그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1980년 12월 22일,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1남 1녀중 둘째로 태어난 이은주. 금은방을 운영했던 부모님덕에 나름 부유하게 자란 그녀는 프로 당구 선수 출신의 아버지를 닮아 활동하는 것을 좋아해 어릴 적부터 무용, 피아노, 바이올린, 수영, 볼링 등을 배웠는데 그 중 장래희망이 피아니스트일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해 5살때부터 12년간 배웠다고 한다.
이은주의 연예계 데뷔는 1996년 7월 선경 스마트 학생복 모델 선발 대회에서 은상으로 입상하면서부터였는데 교복을 사러 갔다 매장 주인이 대회를 나가볼 것을 권유. 본인은 관심이 없었으나, 어머니가 몰래 원서에 사진을 붙여 보내 단번에 예선을 통과. 일이 이렇게 되자 룰라, 터보, 신성우등 유명 연예인이 많이 온다는 어머니 말에 구경할 겸 참가했다가 총 50명 중 7명을 뽑는 본선에 뽑히게 된다. (그녀와 함께 뽑힌 사람 중에는 송혜교와 여성 3인조 힙합그룹 O-24의 안미정도 있었다.)
그렇게 교복 CF로 데뷔한 이은주는 청순한 외모와는 달리 발랄한 모습으로 주목을 받았고, 관계자의 눈에 들어 1997년 당시 예능 코미디 프로인 코미디 전망대의 코너인 '요즘 애들 이렇게 살아요'에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출연했고 같은 해 KBS 드라마 <스타트>라는 드라마에서 반장 정남영역을 맡아 정극에 첫 도전을 하게 된다.
1998년 SBS 납량특집드라마 <어느날 갑자기>에서 귀신과 함께 스티커 사진기에 찍힌 후 자살하는 여고생 박성주 역으로 짧게 출연하였고 8월 말부터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백야 3.98> 1화에서 아나스타샤 (심은하)의 어린 시절 역으로 출연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주목에도 불구하고 배우라는 직업에 큰 매리트를 느끼지 못했었다고 한다. 때문에 촬영이 끝나면 피아노 학원에 가서 피아노 연습을 했었다고...
허나, 그녀는 영화 <송어>를 만나면서 진로를 결정하게 되는데... 크랭크인 6개월 전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은 그녀의 나이는 고3. 미성년자인 그녀에게는 다소 선정적이고 무거였던 역이라 고사했으나 6개월 뒤 감독이 직접 이은주에게 연락해 역활을 부탁하자 결국 출연을 결정. 설경구, 강수연과 함께 연기를 하며 배우라는 직업에 강한 매력을 느껴 피아니스트를 포기하고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며 온전히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이 후, 이은주는 1999년 최고 시청률 33.6%로 흥행한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 냉소적인 성격의 얼음공주 구지원역을 잘 표현해냈다는 평을 받았는데 당시 메인 여주인공인 채림이 제작진과의 불화로 조기 하차한 이 후 강성연이 투입되기 전까지 메인 여주인공 포지션을 독점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자신과 너무나 다른 성격의 구지원을 좋아하진 않았다고...
당시, 상대역인 김정현과 실제로 연애를 시작하여 '한글과컴퓨터'에서 제작한 인터넷 영화 <예카 YECA>에 동반 출연까지 했으나 1년간의 짧은 연애 후 헤어지게 된다.
2000년 이은주는 한국 영화상 30년만에 흑백으로 제작되어 주목받은 영화 <오! 수정>에 출연하게 되는데 이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지금은 김민희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유명한 감독 홍상수의 세번째 영화 작품으로 이은주는 본작에서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은 20대 후반의 케이블 TV 구성작가 수정 역을 맡아 문성근과 정보석 사이에서 순수하면서도 여우같이 밀당하는 모습을 연기하며 노출 및 베드씬까지 리얼하게 표현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영화 <오! 수정>은 200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부산영화평론가 협회 최우수상,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제53회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도 초청되었고 이은주는 2001년 제38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 해 겨울 그녀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병헌의 대학시절 첫사랑 인태희 역으로 캐스팅. 성숙하면서도 애절한 첫사랑의 모습을 잘 그려내 전체 영화 중 출연하는 씬이 3분의 1정도에 불과했으나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냈고, <오!수정>과 <번지점프를 하다> 단 두편으로 충무로의 기대주로 주목받게 된다.
이 후 이전 드라마 <카이스트>의 PD와 출연진(김정현, 강성연, 정성화)과 함께 SBSi에서 제작한 영화 아미지몽에 출현. 2002년에는 차태현, 손예진과 함께 영화 <연애소설>에서 털털하고 발랄하지만 후반부에는 가슴 아픈 사랑을 하는 김경희 역을 맡았는데 그녀는 드라마 <카이스트> 이후 주로 차갑거나 조용하고 성숙한 역할만을 주로 맡았으나 이 영화를 통해 평소 자신의 성격과 같은 발랄한 역할을 하게 되어 좋았다 전했고 이렇게 자신과 잘맞은 역활에 부담없이 연기를 한 그녀는 제23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한다.
이렇게 <오!수정>, <번지점프를 하다>, <연애소설>까지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한 이은주. 허나, 이 후 참여한 공포 영화 <하얀방>, <하늘정원>이 혹평을 들으며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녀는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2003년 이런 그녀에게 <소금인형>이라는 영화의 캐스팅 제안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 영화는 한석규의 형인 선선규가 설립한 힘픽처스에서 제작, <이중간첩> 이후의 공백을 깨고 한석규가 나오는 영화로 크랭크인부터 관심을 받았었다.
하지만, 감독과 스태프의 갈등으로 촬영 지연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고 해를 넘겨 2004년이 되어도 내외부적으로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진행이 20%밖에 되지 못할 정도로 지지부진하게 되는데 이에 그녀는 팬카페 및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소금인형>을 촬영 중에 있다고 언급을 했으나 영화 관계자들은 한석규와 이은주의 계약 만료 기간인 2004년 3월까지 끝내 갈등을 풀지 못했고 결국 투자사였던 CJ가 직접 개입해 제작을 중단시키고 만다.
영화 <소금인형>의 진행이 더뎌지는 사이 이은주는 영화 <안녕! UFO>에서 시각장애인 최경우역으로 새로운 연기 변신을 시도하였는데 이 역활을 위해 그녀는 실제 시각장애인들을 만났고 집에서 눈을 감고 생활을 해보는 열성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노력과는 별개로 영화는 별 반응을 받지 못했는데 영화 자체가 완성도면에서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그 당시 개봉한 블록버스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흥행에 묻혀 초라하게 막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이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그녀가 출연했다는 것. 극 중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장동건의 약혼자로서 그의 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영신을 연기함으로써 많은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낸 이은주는 이 영화로 인해 천만배우 커리어를 만들어내게 된다.
앞서말한 <소금인형> 문제 때문에 공백이 길어지자 그 사이에 한 드라마에 캐스팅되게 되는데 그 드라마는 바로 <불새>였다.
사실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 이지은 역은 김희선에게 먼저 제안이 왔으나, 영화 촬영 문제와 옛 연인 사이였던 에릭이 상대 역으로 캐스팅되었기에 무산되자 그 다음 배우로 이은주를 지목한 것. 하지만 이은주는 <소금인형> 촬영 일정 때문에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으나 영화 제작이 계속 미뤄지자 결국 출연을 수락.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 31.7%에 '불새리안'이라는 열혈팬까지 양산하며 2004년 상반기 최고의 인기 드라마로 군림하면서 극 중 초반 철없는 오렌지족과 10년 후 성숙한 여인이라는 상반되는 상황 속 인물의 행동과 성격을 잘 표현한 그녀는 MBC 연기대상에서 여자 최우수상, 이서진과 같이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하며 그 동안 스크린에서의 부진을 씻어내고 스타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이 후, 그녀는 영화 <주홍글씨>에서 재즈 가수이자 주연인 한석규의 불륜녀인 최가희를 연기. 그간의 멜로 드라마 이미지가 아닌 파격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의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는 소식에 크랭크인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된다.
2004년 10월 15일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주홍글씨>는 개봉 전 기대와는 달리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노출 연기와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감행한 이은주의 연기력만은 관객 및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제2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로까지 노미네이트 되게 된다.
이렇게 <불새>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그녀는 쉬지않고 각종 CF, 화보 촬영을 진행. 영화제에서 집중 조명을 받으며 각종 연예 프로 및 다양한 미디어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이끌어 갈 차세대 여배우로서 정상급의 자리를 향해 가는 그녀의 커리어는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하지만 2005년 2월 22일.
'이은주가 자신의 자택에서' '향년 24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지게 된다. 원인은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
사실 그녀는 2004년 1월 <안녕! UFO> 홍보차 <비타민>에 출연했을 때 의사로부터 우울증 증상을 진단 받았었는데 당시 수면 나이가 무려 59세로 측정됐었고 '지금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 라고 말할 정도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특히, 영화 <주홍글씨>에서 트렁크씬과 베드씬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는데 베드씬은 무려 33차례나 촬영을 감행. 상대 배우였던 한석규가 기절을 할 정도였고 그녀는 6개월간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했으며 그로 인해 체중이 5kg이 빠질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으면서 우울증이 더욱 심각해졌다고 한다.
허나 이런 그녀의 사정을 모르는 지인들이나 매체들은 이은주의 상태를 배역에 몰입한 정도가 조금 강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했고 홀로 고통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 것.
결국, 2005년 단국대 졸업식에서 얼굴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도망가듯이 빠져나가는 와중에 연예가중계와 짧게 인터뷰를 했던 것으로 대중들에게 마지막 모습을 남긴 그녀는 2005년 2월 자유로청아공원내 기독교관에 안치되었다.
이듬해 사후 제4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후보 및 제42회 대종상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면서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후에 알려지길 이은주는 자신을 잘 아는 지인에게 마음이 우울할 때면 소나무 묘목을 사다가 집 근처 강변에 직접 심으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2월 초에 나무를 사려다가 주인이 아직 땅이 얼어서 나무를 심으면 곧 죽는다고 해 대신 새해 소원을 적어 나무를 심으려던 자리에 묻었다 말했고, 장례를 치른 뒤 지인이 이은주가 말한 자리를 파보니 정말로 그녀가 소원을 적은 메모지가 있었다고 한다.
<메모지 전문>
이은주의 소원과 함께 자라길 바라며
1. 사랑하는 내 가족들 모두 행복하게 건강하게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족이라 여기는 한 사람도 내게 베풀어주는 것 이상의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도움이 될 수 있기를..서로가
2. 지금 힘든 시기 <2004년 11월부터 현재 2월> 이제 몸도 마음도..머리도 정상적으로 돌아와 많이 웃고 기쁘게 살고 싶습니다.
3. 좋은 배우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아픔없이 건강해지길...2005.2
배우라는 화려함 뒤에서 홀로 마음이 병든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던 이은주.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 곳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소원처럼 더 이상 아픔없이 항상 행복하길 바래본다.